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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체어는 바실리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자전거에서 시작된 의자, 그리고 나중에 바뀐 이름

디자인사에서 가장 유명한 오해 중 하나는 의자 한 점의 이름입니다. Wassily Chair는 Wassily Kandinsky를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며, 이 이름조차 Marcel Breuer가 붙인 것이 아닙니다. 30여 년 뒤 이탈리아의 한 공장이 내린 마케팅 결정이었습니다.

크롬 도금 스틸 파이프 프레임에 검은 가죽 스트랩을 두른 Wassily Chair가 벽에 나란히 놓인 모습
Marcel Breuer가 디자인한 Wassily Chair(Model B3). 사진: 1971markus, CC BY-SA 4.0, 출처 Wikimedia Commons

자전거가 먼저였고, 그다음이 이 의자였습니다

1925년 Breuer는 생애 첫 자전거를 샀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타는 느낌이 아니라 프레임이었습니다. 그렇게 가는 강관이 성인 한 사람을 지탱하면서도 한 손으로 들 만큼 가벼웠으니까요. 당시 그는 스물세 살, 바우하우스 데사우 캠퍼스 가구 공방의 책임자였습니다.

이 발상을 의자로 옮기는 과정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습니다. 강관을 구부리는 일은 그 시절 가구 공장이 아니라 배관공의 기술이었고, 초기 시제품은 지역 배관 기술자의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더 결정적인 제약은 재료 자체에 있었습니다. 당시 강관에는 모두 용접 이음매가 있어서 구부리면 그 자리가 주저앉았습니다. 이 의자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 철강회사 Mannesmann이 마침 이음매 없는 강관 공정을 완성한 덕분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바우하우스에서 가장 유명한 의자의 전제 조건은 야금 공정이었습니다. 디자인사는 대개 공을 디자이너에게 돌리지만, 1925년에 그 이음매 없는 파이프가 없었다면 Breuer의 손에는 그릴 수는 있어도 만들 수는 없는 아이디어만 남았을 것입니다.

그 이름은 어디서 왔나

Kandinsky도 당시 바우하우스에서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완성품을 보고 마음에 들어 하자 Breuer가 한 점을 더 만들어 Kandinsky의 거처에 두었습니다. 이야기는 거기까지입니다. 그 시절 이 의자의 모델명은 Model B3였고, 아무도 Wassily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전후 이탈리아 제조사 Gavina가 라이선스를 얻어 재생산에 들어가면서 의자의 내력을 조사하다 이 일화를 발견했고, Kandinsky의 이름을 제품에 붙였습니다. 듣기 좋은 이야기에 이미 유명한 인물까지 얹으면 B3라는 숫자 조합보다 훨씬 잘 팔립니다. 1968년 Knoll이 Gavina를 인수하면서 Breuer의 디자인은 전부 Knoll의 카탈로그로 들어갔고, 이 이름도 그대로 굳어졌습니다.

정장을 입고 앉아 있는 중년기 Marcel Breuer의 흑백 초상
Marcel Breuer. 사진: Herbert Behrens / Anefo, CC BY-SA 4.0, 출처 Wikimedia Commons

오리지널은 가죽이 아니라 왁스를 먹인 면사였습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Wassily는 거의 전부 검은 가죽 스트랩 버전인데, 이는 전후 Gavina의 버전입니다. Thonet이 1920년대 말에 생산한 Model B3는 패브릭 스트랩을 썼고 뒷면을 스프링으로 당겨 팽팽하게 유지했으며, 접히는 것과 접히지 않는 것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그 패브릭 스트랩의 소재 이름은 Eisengarn, 직역하면 '쇠실'입니다. 왁스를 먹인 면사로 19세기부터 있던 재료입니다. 이를 사람 몸무게를 견딜 수준으로 개량해 Breuer의 스틸 파이프 가구용 웨빙으로 만든 사람은 바우하우스 직조 공방의 학생 Margaretha Reichardt(1907–1984)였습니다. 이 의자는 모든 디자인사 책에 Breuer 한 사람의 이름으로 실리지만, 앉았을 때 하중을 받는 그 몇 가닥 스트랩은 그녀의 작업이었습니다.

Thonet 버전은 이후 2차 세계대전 중 생산이 중단되어 현재 가장 희귀한 판본입니다.

그 강관은 이후 어디로 갔나

Breuer는 3년 뒤 Cesca 체어(1928)를 내놓습니다. 강관을 구부려 뒷다리가 없는 캔틸레버 구조로 만든 이 의자는 앉으면 살짝 반동이 오는, 역사상 최초의 양산형 스틸 파이프 라탄 체어였습니다. 이름은 그의 양녀 Francesca에게서 왔습니다. 그는 1937년 미국으로 이주해 1944년 시민권을 얻었고, 후반생은 주로 건축에 몰두했습니다.

NOSA는 Knoll을 취급하지 않으며 Wassily도 판매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강관이 남긴 세 가지는 오늘날 가구 곳곳에 남아 있고, 저희가 제품을 고를 때 실제로 들여다보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첫째는 크롬 도금 금속 프레임과 따뜻한 소재의 대비입니다. 한국 브랜드 레어로우(RARERAW)의 ALTER Chair가 바로 크롬 도금 금속 프레임에 컬러 우드를 조합한 예로, 좌판과 등판을 같은 색으로도 엇갈리게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서울의 디자인 스튜디오 SWNA가 디자인했고 크기는 W41 × D48.8 × H76cm입니다. 둘째는 분체도장 스틸입니다. Breuer의 시대에는 없던 공정으로, 강관이 거울 같은 표면만이 아니라 어떤 색이든 가질 수 있게 해줍니다. 레어로우의 PIN STOOL이 이 방식을 쓰며 3.3kg에 스태킹이 가능합니다.

세 번째가 가장 흥미롭습니다. 탄성이 기계 장치가 아니라 구조 자체에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Cesca의 캔틸레버에는 스프링도 가동 부품도 없고, 반동은 강관 스스로가 만들어냅니다. Zuiver의 Flexback 암체어도 같은 발상을 씁니다. 등을 기대면 등판 전체가 뒤로 조금 물러나는데, 이는 지지 구조의 탄성에 기댄 결과입니다. 100년 전의 해법이 지금도 쓰이고 있는 셈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Wassily Chair는 누가, 언제 디자인했나요?

헝가리 출신 디자이너 Marcel Breuer가 1925~1926년 독일 데사우의 바우하우스에서 디자인했습니다. 당시 그는 바우하우스 가구 공방의 책임자였습니다. 원래 모델명은 Model B3입니다.

Wassily Chair는 화가 Kandinsky를 위해 디자인된 건가요?

아닙니다. Wassily Kandinsky는 당시 같은 바우하우스에서 가르치고 있었고, 완성품을 보고 마음에 들어 하자 Breuer가 한 점을 더 만들어 그의 거처에 두었을 뿐입니다. 'Wassily'라는 이름은 수십 년 뒤 이탈리아 제조사 Gavina가 재생산하면서 의자의 내력을 조사하다 이 일화를 발견해 채택한 것입니다.

이 의자는 왜 1925년에야 만들 수 있었나요?

강관 때문입니다. 독일 철강회사 Mannesmann이 이음매 없는 강관 공정을 완성하기 전까지 강관에는 모두 용접 이음매가 있어 구부리면 주저앉았습니다. Breuer는 1925년 생애 첫 자전거를 사고 프레임의 가벼움에 감탄하면서 이 재료로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오리지널 좌면은 가죽이었나요?

처음에는 아니었습니다. Thonet이 1920년대 말에 생산한 Model B3는 패브릭 스트랩을 썼고 뒷면을 스프링으로 당겨 팽팽하게 했으며, 소재는 Eisengarn(쇠실)이라 불린 왁스 먹인 면사 직물이었습니다. 검은 가죽 스트랩으로 바뀐 것은 전후 Gavina가 이어받은 뒤의 일입니다.

NOSA에서 Wassily Chair를 판매하나요?

판매하지 않습니다. Breuer의 디자인은 현재 Knoll이 생산하고 있으며, NOSA는 Knoll을 취급하지 않습니다. 이 글은 디자인 인물을 소개하는 글이며 판매를 위한 글이 아닙니다.

자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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